연재 -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 (1)

Hobby/Entertainment 2003.12.26 13:10


제1장 미나스 티리스

피핀은 갠달프의 망또자락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이 질주가 시작된 이래 너무 오랫동안 갠달프의 망또에 푹 둘러싸여 혼란스런 꿈속을 헤매고 있었기에 아직도 완전히 잠을 깬 건지 아닌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둠의 세계가 뒤로 밀려나며 귓가에는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스쳐지나갔다. 빙글빙글 도는 듯한 별들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오른편 남쪽으로 산맥이 길게 뻗어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어둠이 짙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잠결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또 어디를 지 나왔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그 기억은 불확실하고 몽롱한 것이었다.
대단한 속력으로 출발한 이래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 새벽녘 찬란한 금빛 광선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에는 조용한 도시에 도착해 언덕 위 커다란 빈 집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그들이 채 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또다시 날개달린 어둠의 그림자가 하늘을 덮고 지나가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갠달프가 부드럽게 피핀을 달래 주었고, 피핀은 마치 꿈결처럼 사람들이 지나가며 두런거리는 소리, 갠달프가 지시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구석이 자리를 잡고 과히 편치 못한 잠에 빠져 들었었다. 그리고 그 밤중에 다시 질주가 시작됐었다.
오늘이 그가 신석을 본 지 이틀, 아니 사흘째 되는 밤이었다. 그는 이런 끔찍한 기억을 더듬으며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었다. 바람소리는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 귓전을 울렸다. 국경 너머에서 노란 불꽃이 피어올라 하늘을 불태웠다. 피핀은 더럭 겁이 나 몸을 움츠렸다. 갠달프는 지금 어디로 나를 데려가고 있는 걸까. 그는 눈을 비비고나서야 동쪽 어둠 속에서 거의 보름에 가까워진 달이 떠오르는 중이라 는 것을 알았다. 밤은 아직 그리 깊지 않아 몇 시간 더 어둠 속의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갠달프?"
"곤도르로. 지금 아노리엔을 지나고 있지."
잠시 다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후 피핀은 갠달프의 망또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저게 뭐예요? 보세요! 불, 붉은 불이에요! 이 근처에 용이라도 있나요? 보세요, 저기 또 있어요!"
그러나 갠달프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섀도우폭스에게 외쳤다.
"가자, 섀도우폭스! 서둘러야 해! 시간이 없구나. 봐라! 곤도르의 봉화가 타오른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야. 아몬딘의 봉화! 엘레나크의 봉화! 점점 서쪽으로 전달되고 있는 거야. 나르돌, 에렐라스, 민 리몬, 칼렌하드 그리고 로한의 국경 할리피렌으로!"
섀도우폭스는 느릿느릿 걸어 가다가 목을 들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어둠 저편에서 다른 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세 명의 기사가 말을 몰고 그들을 지나쳐 마치 달빛 속의 유령처럼 서쪽으로 사라져갔다. 섀도우폭스도 다시 굽을 모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 뒤로 어둠이 썰물처럼 스쳐 지나갔다. 갠달프는 곤도르의 풍습과 그 영주가 방대한 국경선을 따라 높이 솟은 봉우리들에 봉화대를 설치한 사실, 그리고 위급할 때 북쪽의 로한이나 남쪽의 벨팔라스에 전령을 파견하기 위해 항상 말을 대기시켜 놓는다는 사실 등을 이야기해 주었으나 피핀은 다시 졸음이 쏟아져 와 거의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북부의 봉화가 타오른 지도 상당히 오래됐지. 그렇지만 고대의 곤도르에는 그런 것이 아예 필요가 없었어. 그들은 일곱 개의 신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피핀은 신석이란 말을 몸을 움찔했다.
"무서워할 건 없어. 잠이나 자게. 자넨 프로도처럼 모르도르로 가는 게 아니라 단지 미나스 티리스로 가는 거니까 말이야. 지금으로선 거기만큼 안전한 곳도 없을거야. 만일 곤도르가 함락되거나 반지를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샤이어도 더이상 안전할 수는 없겠지."
"아무래도 위안이 되는 이야긴 아니군요."
그러나 잠은 여전히 쏟아져 왔다.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서쪽 달빛을 받으며 구름 위에 떠 있는 횐 산봉우리들이었다. 그는 프로도가 지금 어디 있는지, 혹시 모르도르에 도착했는지 아니면 죽고 말았는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날 밤 프로도 역시 곤도르 저편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피핀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말 위에서의 하룻밤이 또 지나갔다. 새벽녘이었다. 차가운 새벽공기가 느껴졌고 주위에는 음산한 회색 안개가 깔려 있었다. 섀도우폭스는 땀을 흘리며 콧김을 내뿜고 있었지만 여전히 목을 꼿꼿이 세운 채 피로한 기색을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옆에는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서 있었고 그들 뒤에는 안개 속에서 성벽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벽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있어 아직 밤이 채 걷히지 않았음에도 복구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망치소리, 흙 바르는 소리, 바퀴소리 등등. 횃불이 안개 속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었다. 갠달프는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피핀은 그들에 지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지휘자 같아 보이는 기사가 말했다.
"사실 우린 당신을 압니다, 미스랜더. 또 일곱 개소 성문의 통과암호도 알고 계시니 들어가실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린 당신과 함께 온 저 사람은 모릅니다. 누구지요? 북쪽 산에서 내려온 난쟁인가요? 요즘엔 이방인을 환영하지 않지요. 특히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거나 우리한테 도움을 줄 만한 힘을 갖춘 전사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난 저 사람을 데네도르공 앞에서라도 보증할 수 있소. 그리고 무용(武勇)이란 것이 반드시 키에 비례하는 건 아니오. 잉골드, 그대는 이 친구보다 두 배는 키가 크지만, 그는 그대보다 더 많은 격렬한 모험과 전투를 겪어 왔소. 또한 그는 우리가 소식을 가져온 그 이센가드의 폭풍 속을 막 지나온 길이라 무척 지쳐 있소. 그렇지만 않다면 그를 깨울 텐데 말이오. 그의 이름은 페레그린이고 아주 용감한 사람이오."
"사람?"
잉골드는 의심스러운 듯 반문했고 다른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피핀은 이제 완전히 깨어나 외쳤다.
"사람! 물론 아니오! 난 호비트고 또 인간이 아닌 것처럼 필요한 때만 빼곤 별로 용감하지도 않아요. 그래요, 갠달프가 당신들을 속인 거예요."
그러자 잉골드가 말했다.
"위대한 일을 한 이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지요. 그런데 호비트란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갠달프가 대답했다.
"하플링이오. 물론 그 노래 속의 하플링은 아니고."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는 기색이 떠오르자 그는 덧붙였다.
"이 친구가 아니라 그 동족 중의 하나지."
그러자 피핀이 끼어들었다.
"그래요. 난 그와 같이 여행한 친구예요. 당신네 나라의 보로미르도 함께 있었지요. 저 북쪽 눈 속에서 날 구하고는 결국 많은 적들에게 살해되었지만요."
"조용히! 슬픈 소식은 그의 부친에게 먼저 알려야지."
갠달프가 이렇게 주의를 주자 잉골드가 말했다.
"벌써 예상하고 있는 일입니다. 근래에 이상한 전조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쨌든 통과해도 좋습니다. 미나스 티리스의 영주께선 그 아드님의 소식을 들려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실 테니까요. 그가 인간이건 아니면......"
"호비트예요. 당신들의 영주께 큰 도움은 못 되겠지만, 난 용감한 보로미르를 생각해서라도 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그럼 조심해 들어 가시지요."
잉골드가 말했다. 사람들이 길을 터주자 섀도우폭스는 성벽 사이의 좁은 문을 통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잉골드가 뒤에서 외쳤다.
"요즘같이 도움이 필요한 때에 데네도르공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자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미스랜더! 당신은 습관처럼 항상 슬픔과 위험의 소식만을 가져온다고들 말하지만 말입니다."
"자주 오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만 오니까 그런 소리들을 하겠지. 좋은 충고로 말하자면, 펠레노르의 성벽 수리에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있다는 말을 해야겠는걸. 이렇게 폭풍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는 용기가 가장 좋은 방어책이 될 거요. 희망을 가지시오. 난 나쁜 소식만을 가져온 건 아니니까. 자, 어서 흙손을 치우고 칼을 정비할 시간이오."
"이 일은 저녁 전에 끝날 겁니다. 여기가 방어선 성벽의 마지막 부분이니까요. 그리고 이쪽은 우방 로한과 인접한 곳이니까 공격당할 위험이 제일 적은 곳이지요. 그들 소식을 알고 계신가요? 그들이 도우러 올까요?"
"그렇소. 그들은 올 거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당신들 후방에서 많은 전투를 치렀소. 이쪽, 아니 이젠 그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소. 하지만 부디 용기를 내시오. 폭풍의 까마귀 갠달프가 아니었다면 그대들은 로한의 기사들을 보기는커녕 아노리엔으로부터 수많은 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오. 아직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지. 부디 안녕히! 졸지 마시오."
갠달프는 이제 람마스 에코 너머의 넓은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곤도르인들은 이딜리엔이 함락되자 맏은 인원과 장비를 들여 외벽이라 불리는 성벽을 건조했다. 성벽은 산맥 기슭으로부터 삼십여 마일 이상 길게 뻗어 나오다가 다시 돌아들어, 펠레노르평원을 완전히 둘러쌌다. 펠레노르는 아름답고 기름진 도시평원으로 안두인대하의 깊은 수면을 향해 길게 뻗쳐 있었다. 도시의 성문으로부터 가장 먼 부분은 동북쪽으로, 시에서 십이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고 그 성벽은 험준한 강둑 위에 강을 따라 축조되었다. 사람들은 그 성벽을 아주 높고 튼튼하게 쌓았다. 왜냐하면 그 성벽은 오스길리아스의 다리로 통하는 길목이자, 무장된 탑 사이의 차단선으로 통하는 길을 방어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이었다. 시에서 가장 가까운 성벽은 약 삼 마일 정도 떨어진 것으로 남동쪽 방면의 성벽이었다. 남이딜리엔의 에민 아르넨산 중턱을 돌아나가던 안두인대하는 그곳에서 서쪽으로 급히 꺾였고, 외벽은 바로 그 강둑에 세워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남쪽 영지로부터 역류를 거슬러 오는 배들을 위한 할론드부두가 있었다.
도시평원은 넓은 경지와 많은 과수원으로 아주 풍요로웠으며 농가에는 곡식건조장, 창고, 가축우리, 외양간 등이 있었다. 고지대에서는 여러 갈래의 개울이 흘러내려 푸른 들을 통해 안두인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거주하는 목자나 농부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의 일곱 원형구역 안에 살거나 아니면 로사나크의 산속 깊은 계곡에서, 또는 훨씬 남쪽 다섯 갈래의 빠른 지류가 흐르는 아름다운 레베닌에서 살았다. 산맥과 바다 사이에는 거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도 곤도르인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혈통은 흐려졌으며 또 그들 사이에는 곤도르왕국이 세워지기 전 암흑의 시대로부터 계보가 이어져 온 키가 작고 피부가 거무스레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너머 벨팔라스의 거대한 영지에는 임라힐왕자가 바다에 면한 성 암로스에 살고 있었다. 그는 고귀한 혈통을 가진 이로 그의 종족 역시 푸른 눈의 꿋꿋한 사람들이었다.
갠달프가 한참 말을 몰아가고 있는 동안 하늘에는 햇살이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피핀은 몸을 일으켜 망또 밖을 내다보았다. 왼쪽으로는 동쪽의 삭막한 어둠을 끌어들이는 안개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산맥이 서쪽에서 갑자기 끊어지며 머리를 높이 쳐들고 있었다. 그건 마치 이 거대한 계곡이 앞으로 다가올 전쟁과 협상의 자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강물로 길을 내고 터져 나온 것 같아 보였다. 에레드 님 라이스의 흰 산맥이 끝나는 곳에서 그는 갠달프가 말한 것처럼 민돌루인산의 거봉과 그 깊은 골짜기의 짙은 자줏빛 안개, 그리고 밝아오는 태양 아래서 하얗게 빛나는 긴 산등성이를 보았다. 산기슭에는 방어준비를 갖춘 도시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도시를 둘러싼 일곱 겹의 성벽은 너무 튼튼하고 오래돼 보여 마치 인간이 축조한 것이 아니라 땅의 뼈로 이루어진 거인이 조각한 것처럼 보였다.
피핀이 경이롭게 성벽을 바라보는 동안 성벽은 회색에서 흰색으로 점차 변하며 햇빛을 받아 빛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태양이 동쪽 어둠을 넘어 모습을 드러내며 도시 정면으로 빛을 보냈다. 피핀은 크게 탄성을 올렸다.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은 엑델리온탑이 하늘을 향해 자태를 드러내며 진주와 순은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찬연히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흉벽에는 하얀 깃발이 아침 선들바람에 펄럭였고 은으로 만든 트럼펫 같은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갠달프와 페레그린은 떠오르는 태양 아래서 곤도르의 성문에 이르렀다. 그들이 다가가자 철로 된 성문이 열렸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외쳤다.
"미스랜더! 미스랜더! 당신을 보니 정말 폭풍우가 다가온 걸 알겠군요."
"당신들 머리 위에 와 있지. 난 폭풍의 날개를 타고 왔소. 자, 비켜 주시오. 난 데네도르공께서 섭정의 권한을 갖고 계시니 먼저 그를 만나야겠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곤도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할 때가 된 것이요 자, 비켜들 주시오."
사람들은 그의 앞에 타고 있는 호비트와 그가 탄 말에 호기심의 눈길을 보냈지만 갠달프의 말에 따라 길을 비켜 뒤로 물러섰다. 이 도시에서는 말을 거의 기르지 않았으며 영주의 전령마를 제외하면 길에서 말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섀도우폭스를 보고 서로 속삭였다.
"아마 저 말은 로한의 왕이 기르는 커다란 말 중 하나겠지? 이제 곧 로한인들이 달려오면 우리 힘은 배가될 거야."
그러나 섀도우폭스는 길게 구부러진 길을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성은 미나스 티리스의 건조양식대로 산기슭을 일곱 단으로 깎아 단마다 성벽을 쌓았고, 성벽마다 성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성문은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뚫려 있었다. 가장 큰 성문은 성곽 동쪽에 있었으며 그 다음 성문은 남동쪽, 세번째는 북동쪽, 이런 식으로 엇갈리게 성문을 세워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궁성으로 가는 길은 첫 성문을 지나면 다음 성문까지는 언덕을 따라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최초의 성문에서 맨 위 일곱번째 성벽까지, 첫 구역을 제외한 전 궁성을 둘로 가르는 거대한 차단벽이 축조되어 있어 성문을 나설 때마다 다음 성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벽에 난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또 자연적인 산세와 고대의 인력, 그리고 뛰어난 기술에 힘입어 큰 성문 뒤의 넓은 광장 끝에는 동쪽에서 보면 마치 배의 용골처럼 날카로운 망루가 솟아 있었다. 그 망루는 맨 위 성벽까지 연결된 차단벽의 앞부분으로 전체가 흉벽으로 싸여 있었다. 그래서 맨 위 궁성에 사는 사람들도 배 돛대 위의 선원처럼 삼백삼십 미터 아래에 있는 맨 아래 성문 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동쪽을 향해 열려 있는 궁성의 입구도 차단벽과 마주치기 때문에 터널은 꺾여져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결국 궁성에서부터 맨 아래 성벽까지 긴 경사면의 흉벽으로 둘러싸인 차단벽이 성곽의 중추가 되는 것이었다. 궁성에 들어서면 백색탑 발치에 있는 궁정과 분수의 광장에 도달하게 된다. 백색탑은 기단에서 첨탑까지 쉰 길이나 되는 높고 아름다운 건물로 평지로부터 삼백 미터나 되는 높이에서 섭정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이 도성은 실로 견고한 것으로 적이 배후로 돌아 민돌루인산 기슭을 점령해 성곽이 산에 이어지는 견갑부 언덕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최소한의 인원으로도 능히 지킬 수 있는 요새였다. 또한 그 견갑부가 되는 언덕은 다섯번째 성벽과 비슷한 높이로 서쪽 절벽까지 견고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산과 탑 사이의 가장 안전하고 조용한 곳이기에 죽은 왕과 영주를 위한 둥근 지붕의 건물과 무덤들이 있었다.
피핀은 이센가드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튼튼하며 아름다운, 아니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크고 장엄한 도성을 경이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도시는 해가 바뀜에 따라 조금씩 황량한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표시에는 적정 인구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길을 가다 본 커다란 건물과 궁성의 문과 벽에는 고대의 것으로 보이는 아름답고 이상한 모양의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피핀의 생각으로는 과거 이 도시에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이나 그 친족들의 이름 같았다. 그러나 길은 아주 넓고 조용해 보도 위에는 발걸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건물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으며 문이나 창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일곱번째 성문으로부터 걸어나왔을 때, 프로도가 이딜리엔의 습지를 걸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어 벽과 지붕, 그리고 왕관을 쓴 왕의 머리처럼 보이는 종석이 달린 아치를 비추고 있었다. 궁성 안에서는 말을 타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갠달프는 말에서 내렸다. 섀도우폭스는 주인의 부드러운 지시에 따라 자기에게 적당한 장소로 혼자 걸어갔다.
궁성 경비대원들은 검은 옷을 입었으며 투구는 왕관을 연상시키는 이상한 모양으로 생겼지만 머리에 꼭 맞도록 얼굴 옆으로 가리개가 뻗쳐 있었다. 가리개 윗부분에는 흰 바다새 날개의 장식이 달려 있었다. 장식은 고대 곤도르 영화의 유물인 미스릴로 만들어졌기에 은빛으로 빛났다. 그들의 검은 겉옷 위엔 은색 왕관과, 찬란한 별들 아래 눈처럼 하얀 나무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은 엘란딜의 후계자의 제복으로, 한때 신성한 흰 성수가 서 있던 분수의 궁정을 지키는 경비대원 외에는 아무도 입을 수 없는 것이었다.
도착하기 전에 이미 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 질문도 받지않고 통과되었다. 갠달프는 하얗게 포장된 궁정길을 빠르게 걸어갔다. 아침햇빛 속에서 달콤한 분수가 솟았고 주위엔 푸른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중앙에는 분수대를 굽어보는 말라죽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어 분수 물방울이 그 말라비틀어진 가지에 부딪혀 다시 분수대의 물로 떨어졌다.
피핀은 갠달프 뒤를 열심히 따라가며 이 광경을 보았다. 슬퍼 보였다. 왜 저런 말라죽은 나무를 이렇게 다른 모든 것들이 잘 가뀌진 궁정에 방치해 둔 것인지 의아했다. '일곱 개의 별과 일곱 개의 신석 그리고 흰 성수 한 그루.'
전에 갠달프가 중얼거렸던 이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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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매일 조금씩 읽다보면 어느새 다 읽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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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지언이 2003.12.27 02: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홋..잘되었다..내가 꼭 확인하고 픈 대목이 있거든.
    아라곤이 에오윈(?)의 사랑을 거절하는 장면...왜 그런식으로 대답하는 건지 이해가 안되었는데...책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잘되었다...앞으로 기대할게!

  • 길버트 2003.12.27 08: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영화랑 책이 많이 다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