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창업 두번째 이야기(3) - 대박도 잠깐... 단골손님이 경쟁자로

Hobby/Board Games 2004.03.31 12:58

2004/03/19 09:54:33



이제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보자.  다름아닌 경쟁의 이야기로, 우리가게의 손익계산서에 대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전체의 손익에 관심을 가지고, 회사의 현황이나 앞으로의 영업전략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손익계산서의 위력을 실감할 것이다. 손익계산서는  회사의 모든 활동을 숫자로 집약한 요약서이다. 작게는 7명 많게는 7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을 숫자로 표시해서 정리한 문서인 것이다. 그리고, 손익계산서의 앞뒤를 꽤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수 있는지 감잡을 수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그런행위를 운전하는 행위에 빗대어 'Drive the numbers'라고 표현하곤 했다. 회사가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목표들을  결국 손이계산서의 모습으로 반영된다. 시장점유율이 중요한  회사는 매출증가율이 가장 중요하고, 적자가 나기 시작한 기업은 비용절감이 중요하다.  

2003년 1월 30일 오픈한 우리는 오픈 초기 영업시간 12시간 중 6시간 이상을 만석을 이루며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졌다.  월간 매출이 2000만원 육박했는데, 우리 업종이 원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익이 얼마되는지는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월세와 인건비를 제하면 전부 순이익이 되는 구조란 말이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약 3개월... 손님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새로운 놀이문화에 신기해했다.

당시, 서울에는 보드게임 카페가 9개였다. 우리가 오픈하기 전에 7개였는데, 모두 신촌과 신림에 있었고, 강남에서는 우리와 압구정동의 쥬만지가 새로 문을 열었다. 압구정동의 쥬만지도 우리에 버금가는 실적을 보였고, 선점의 이익을 톡톡히 보았다 .우리는 남는 돈으로 부채상환에 들어갔고 매달 평균 1000만원을 갚아내는 괴력(?)을 보였다. 36평 가게에서 1000만원을 남기는 것은 그나 지금이나 괴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4월 중순 강남 길건너 메인통에 50평 규모의 카페가 열린 것이다. 그 가게를 차린 분들은 다름아닌 우리가게의 단골손님 4분. 3개월의 영업을 지켜보고 그대로 옮겨 차린것이었다.

.매출 분석결과, 4월 전까지는 주말 게임비일 매출이 항상 80만원을 넘었는데 그 가게 하나로 80만원을 못 넘기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브랜드를 믿고 크게 요동하지  않았다. 인테리어도 우리가 더 아기자기하다고 믿었다. 게임설명 실력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가게의 초기 아르바이트생들은 우리가게의 손님으로 둔갑하여 교육을 받았을 정도이다. 그래도 동종업계라고 오픈일 화분을 들고 인사를 갔는데 얼마나 놀랬는지. 주인과 도우미가 모두 우리가게의 단골들이었던 것이다!



5월은 매출이 극대화되는 달이다. 날도 좋고, 휴일도 많아 소비가 많이 는다. 그래서였는지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경쟁의 실상을 내다보지 못하고 현상유지를 위해 힘썼다.  5월말 경 1차 쇼크가 도래했는데,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우리와 같은 편에 3곳의 카페가 동시에 문을 연 것이다.  

3곳 모두 우리보다 훨씬 메인통에 근접해 있는 곳들이었다.  그 3곳 중 하나는 역시 우리 단골출신이 개인적으로 차리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체인점을 찍어내고 있던 쥬만지 였다.  마지막은 '카지노'의 인테리어 컨셉으로 새로 무장한 곳이었다.  6월에 매출이 30% 꺾이면서 강사장과 나는 대비책에 부심했다. 6월말에 있는 기말고사의 영향도 컸지만, 5개로 늘어난 카페들이 서로 나눠먹기에 급급해진 것이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2~3배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으니 암담하기 그지 없었다. 강사장은 이때부터 매각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시장에서의 입지에 대해 너무고 암담하게 보았던 것이다. 손님들로부터 기대했던 로얄티는 전혀 없었고 크고 새로운 매장으로 손님을 빼았기는 것을 보면서 현실적인 판단이 앞섰던 것이다.  

실제로 알아본 결과 내수경기가 점점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점차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4월에 보내져왔던 2억에 이르는 매수의사는 과거속의 러브콜로 우리를 더욱 괴롭게 만들뿐이었다.  급기야, 6월 중순에는 하루 영업을 중단하고 다른 상권의 보드게임업종을 돌아보기로 했다. 압구정으로 향했다.

별 답없이, 그리고 선택의 여지 없이 우리는 영업을 지속했다 . 방학의 특수를 이용해 최대한 이익을 내고, 언제든지 매수자가 나타나면 매각하기로 하고 우리의 하한가를 정해놓았다. 학기중에는 대학가에 있는 카페들이 성업을 이루었는데 이것도 우리의 판단을 후회하게 만드는 요소중 하나였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강남에 차린 것이 후회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7월 8월 강남의 방학 특수가 한 몫을 해 매출이 급증했고 옛 모습을 되찾는 듯 했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써비스가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영업을 지속하기로 마음을 돌이켰다.

그러나, 8월 말 강남역권에만 7군데가 새로 생기면서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2학기의 침체는 1학기의 그것보다 심해 9월에는 적자의 위기에 몰렸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아픈 결정을 하게되었다. 독자들이 보기에는 실감이 안갈 수 있지만 우리 사장들은 도우미들과 굉장히 친밀하게 지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었고 정도 많이 쌓았다 .하지만, 적자의 위기는 사장인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했다. 그래서 전체 인원 10명 중 5명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된 다행스런 경우도 있었지만 교육을 받은지 1주도 안 돼 보내게 된 친구도 있었다. 강사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절대로 인원을 데려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내가 너무도 답답했다.  아르바이트생과의 관계도 이러한데 회사에서는 어떨까? 그 사람의 용돈이 아니라 생계를 놓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무섭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여간 , 다른 카페는 흉내도 낼수 없는 인력구조를 새로 짜서 10월을 맞이했다. 예상대로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고  10월, 11월 적자를 모면하는 수준으로 영업을 지속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때 부터 우리가게의 진정한 영업전략들이 이루어 지기 시작했다.  

정연욱 wooky39@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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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길버트 2004.03.31 12:5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내가 가끔 가는 itooza.com에서 퍼온 것인데.
    이 다음 이야기는 아직 안 올라왔다..